"친일 넘어 친나치 '안익태의 애국가' 이대로 둘 것인가"

홈 > 사는재미 > 정치&시사
정치&시사
 다음   네이버  구글    JTBC  KBS  MBC  SBS  EBS   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  경향  한국  서울  오마이  연합   mbc  kbs  sbs  cbs  tbs   오유  웃대  뽐뿌  클리앙  아고라  디시인사이드  네이트판  미즈넷  82쿡  유머  개그  유머1 개그1 아재개그 웃긴글 폭소유발   인쿠르트  스카우트  잡코리아  사람인  커리어  알바몬  알바천국  워크넷  벼룩시장  //이력서  자소서   상권정보  상권분석  아이템  소자본   법률  자금  프랜차이즈 《  헤드라인뉴스  오늘의운세1   오늘의운세2  오늘의명언  오늘의영어회화  오늘의중국어회화  오늘의일본어회화  》

"친일 넘어 친나치 '안익태의 애국가' 이대로 둘 것인가"

최고관리자 0 1475

41e1bbc75eb7a6b89c37caecacfd9594_1547501717_5103.jpg


 

안익태도 처음부터 친일파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35년께 미국에서 ‘애국가’를 초연할 때만해도 “우리 민족운동과 애국정신을 돕는 데 대단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힌 적이 있다. 안익태가 본격적으로 친일 활동을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였다. 1941년 독-소 전쟁이 벌어지자, 일제는 유럽지역 자국민 소개령을 내렸다. 하지만 그대로 귀국하게 되면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오기까지 이룩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에 안익태는 베를린 주재 만주국 외교관으로 위장한 일본의 유럽 첩보망 총책이었던 에하라 고이치를 찾아가 “상담을 요청”한다.

그 덕분에 안익태는 1941~44년까지 만 2년 반 동안 에하라의 베를린 자택에 머물 수 있었다. 44년 히틀러의 생일 기념으로 파리에서 열린 ‘베토벤 페스티벌’을 비롯해 그는 동맹국(독일·이탈리아 등)과 점령국(프랑스), 우방국(스페인)에서만 30차례의 공연을 지휘한다. 자신이 작곡한 <에텐라쿠>, <만주국 환상곡>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일본 축전곡> 등도 연주했다. 특히 그는 나치독일에서 유일한 조선 출신 제국음악원 회원이 됐다. 그 회원증에서 그는 출생지를 평양이 아닌 도쿄로 속여서 적기도 했다. 이 교수는 “안익태는 2차 대전이 발발한 이후엔 약한 민족주의 성향마저 탈색되면서 적극적인 친일로 전향했는데, 본래부터 음악적으로 성공하겠다는 출세욕이 강한 인물이었던 걸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https://news.v.daum.net/v/20190114205624398


0 Comments

*무플보다는 댓글을, 악플보다는 선플을*

카카오 : marupan
인스타 : yclove.kr
맛따라멋따라 : http://www.foodie.kr
렌즈포유 : https://www.lens4u.net
마루판닷컴 : https://www.marupan.com
재미조아? : http://www.jemijoa.com
레클리스소개 : http://www.reckless.kr
연천사랑 : http://www.yclove.kr
일상을프레임에가두다 : https://14128625.tistory.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4884512715
유튜브'학교말' : https://www.youtube.com/channel/UCreDkZ5fZlXJR2TSWm5Jy_w
유튜브'연천사랑TV' : https://www.youtube.com/channel/UCFtG7X5jZVgM8jNvo1RMDTw

Category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